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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

제16차 이론아뜰리에: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에 관하여”

2026-06-02

제16차 이론아뜰리에: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에 관하여”

서울대학교 현대한국종합연구단 미래팀은 2026년 6월 1일, 정치철학자 박이대승 선생님을 모시고 제16회 이론아뜰리에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에 관하여〉를 개최하였다. 온라인 학술행사로 진행된 이번 발표는 툴루즈-장 조레스 대학교 초청연구원으로 파리에 체류 중인 저자의 신간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2026)를 바탕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제도적 결함이나 시민의식의 미성숙 차원에 한정하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작동해온 방식의 문제로 재구성하였다. 행사에는 교내 학부생, 대학원생, 교원을 비롯해 약 45명이 참여하였다. 강연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되었으며, 이후에는 흥미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질의응답에서는 ‘공통된 것’의 의미,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진단이 수반할 수 있는 가치 판단의 문제, 비판자 혹은 critic으로서의 샤먼이라는 형상의 이론적 함의가 주요하게 논의되었고, 한국 민주주의의 개념적 조건과 서구 민주주의 모델과의 관계, ‘민주주의’라는 말의 번역과 변이 가능성에 대한 질문도 함께 제기되었다.

발표의 출발점은 서구의 ‘democracy’와 한국어 ‘민주주의’가 과연 같은 개념을 지시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를 제도나 이념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민주주의라는 말을 어떻게 발명하고 변이시키는가의 문제로 다루려는 인류학적 접근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민주주의는 헌법, 선거, 정당, 의회와 같은 제도적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시민 개념, 평등의 원리, 권리와 의무의 사회관계, 공적 논의를 위한 합리적 언어와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들을 안정적으로 공유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공동체의 외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 공동체를 실질적으로 묶는 공통의 규칙과 개념이 취약한 역설적 상태로 이해된다. 발표 제목인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압축하는 표현이다.

발표는 이 문제를 로이 와그너의 “문화의 발명”,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애매성”, 들뢰즈와 과타리의 “소수화-되기” 등의 논의를 경유하며 설명하였다. 핵심은 한국이 서구 민주주의를 단순히 수입하거나 복제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한국어와 한국 근대의 조건 속에서 모방하고 변이시키며 다시 발명해왔다는 데 있다. 이에 따라 한국어 ‘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 통치’라는 안정된 개념에 고정된 말이라기보다, 국민 주권, 국민이 주인이라는 이념, 민중 주체성, 다수의 의지 등으로 의미를 계속 변주하는 유동적인 기표로 제시되었다.

같은 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같은 정치적 현실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인도 democracy를 말하고 한국인도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두 말이 각각의 역사적·문화적 조건 속에서 가리키는 대상은 다를 수 있다. 저자가 주목한 “애매성”은 바로 이 어긋남을 가리킨다.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말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기보다, 모두가 민주주의를 말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 말이 공통의 개념적 규칙으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논의는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이라는 진단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불가능성이란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적 열망이나 실천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와 다른 정치적 현실이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구조를 가리킨다. 저자는 한국 근대를 서구 근대의 단순한 복사본이 아니라 서구 근대의 소수화-되기로 보았고, 한국 민주주의 역시 그러한 변이의 산물로 설명하였다. 이 관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제도의 결핍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며, 정치적 언어의 조건과도 깊이 관련된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공통의 개념으로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산출할 때, 민주주의 공동체는 공동의 토대를 충분히 형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때로는 바로 그 ‘공통된 것’의 성립 자체를 비껴가거나 거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