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교 현대한국종합연구단이 “Korea as Method”를 주제로 8월 21일과 22일 양일간 개최한 제3회 국제학술대회의 첫째 날, 「역사적 근대성(Historical Modernity)」 세션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40호에서 진행되었다. 이종욱(서울대학교)의 사회 아래 신승엽(한동대학교)과 켄 박(버지니아대학교)의 두 발표가 이어졌다. 두 발표는 각각 식민지기 역사서술과 서울의 음식물쓰레기 처리 인프라를 다루면서, 근대성을 단선적인 발전 과정이나 이미 주어진 보편적 기준으로 이해하는 시각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였다.

먼저 신승엽(한동대학교)은 「‘근대성에 압도된’ 식민지 조선: 1920~30년대 역사서술의 정치와 조선학(“Overcome by Modernity” in Colonial Korea: The Politics of History Writing and Chosŏnhak in the 1920s–30s)」이라는 제목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형성된 역사서술의 지적 구조와 그 한계를 분석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에서 ‘보편주의’와 ‘특수주의’는 오랫동안 중요한 해석의 틀로 기능해 왔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에 대한 강조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한국사를 보편적 역사 발전의 과정 속에 위치시키는 동시에 민족적 특수성을 밝히려는 두 목표는 지속적으로 역사서술의 중심에 자리하였다.
신승엽은 이러한 인식의 기원을 1920년대 후반 등장한 ‘조선학(Chosŏnhak)’에서 찾았다. 조선학은 민족의 정체성과 전통을 재발견하면서 한국사를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려는 지적 기획이었다. 당시 민족주의 역사학은 한국의 고대적 유산과 민족적 독자성을 강조한 반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통해 민족주의의 본질주의적 성격을 비판하였다. 방법론과 이념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지만, 두 흐름 모두 서구와 일본이 지배하는 제국주의적·자본주의적 세계질서를 정당화하는 기존의 역사서술을 넘어서려 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러나 신승엽은 이들이 보편과 특수라는 헤겔적 도식 자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식민지 역사학을 극복하고 독자적인 역사적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시도가 역설적으로 유럽중심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인식론의 일부를 재생산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식민지기 역사서술은 민족의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동시에 근대적 지배구조의 논리를 다시 만들어내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다. 발표는 이러한 긴장을 통해 조선학이 형성된 지적 조건과 그 이론적 한계를 새롭게 조명하였다.

이어 켄 박(버지니아대학교)은 「방법으로서의 서울: 돼지, 음식물쓰레기 인프라, 그리고 혼종적 도시대사(Seoul as Method: Swine, Food Waste Infrastructure, and Hybrid Urban Metabolism)」라는 제목으로 서울의 음식물쓰레기 처리 역사를 추적하며 한국의 도시 인프라가 국가 주도의 단선적인 근대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통념을 재검토하였다. 그는 인구와 물질이 고도로 집중된 서울에서 도시화의 압력과 모순이 다른 지역보다 빠르고 압축적으로, 그리고 더욱 가시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서울을 단순한 한국의 한 사례가 아니라 과잉집중된 현대 대도시의 미래를 사고할 수 있는 일종의 선행적 실험실로 보았다.
191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서울의 음식물쓰레기 상당 부분은 민간 수거업자들을 통해 도시 주변부의 양돈장으로 운반되었다. 이 과정에서 돼지는 유기성 폐기물을 소비하면서 도시의 위생을 유지하는 비인간 행위자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운송비 상승으로 이러한 순환체계가 흔들리면서 음식물쓰레기는 매립지로 향하게 되었다. 곧 침출수 문제와 인근 주민들의 저항이 심화되면서 매립 방식의 한계 역시 드러났다.
이에 행정 당국은 다시 음식물쓰레기를 돼지 사료로 활용하는 방식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양돈 방식의 변화, 특히 조기 이유의 확산으로 돼지의 소화능력이 달라지면서 음식물을 그대로 공급하기 어려워졌고, 별도의 전처리 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국가는 기존의 민간 네트워크를 대체하기보다 오히려 그 안으로 편입되었다. 켄 박은 이러한 역사를 통해 도시 인프라를 국가가 계획하고 건설한 고정된 시설의 집합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국가와 민간, 도시와 주변부, 인간과 동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혼종적 도시대사(hybrid urban metabolism)’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두 발표가 끝난 뒤에는 홍종욱(서울대학교)과 윤성민(서울대학교)의 논평이 이어졌다.


이날의 두 발표는 서로 매우 다른 대상과 시기를 다루었지만, 한국의 근대성을 이미 정해진 하나의 발전경로로 이해하는 시각을 재고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식민지기 역사학에서는 서구적 보편성에 맞서려는 지적 시도조차 보편과 특수라는 근대적 인식의 틀에 포섭될 수 있었으며, 서울의 도시 인프라에서는 국가가 전근대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체계를 일방적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민간의 네트워크와 인간·동물의 관계 속으로 편입되며 새로운 체계가 형성되었다. 이를 통해 세션은 근대성을 전통에서 근대로, 비공식에서 공식으로, 주변에서 중심으로 나아가는 단선적인 전환으로 보기보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충돌하고 결합하며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으로 재해석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한국의 경험을 기존 근대화 이론의 사례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대성 그 자체를 새롭게 이론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