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교 현대한국종합연구단은 8월 21일과 22일 양일간 “Korea as Method”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국가성과 시민사회 팀은 서울대학교 101동 아시아연구소의 240호에서 “What can K-Philosophy be? – Innovative and decolonial approaches on conceptualizing Korean philosophy as an epistemic resource for global debate” 세션을 진행하였다. 본 세션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진형 책임연구원의 사회 아래 다음 네 편의 발표가 이어졌다.

첫 번째 발표에서 화상으로 참석한 이화여자대학교 김선희 교수는 “Philosophy as Narrative and Korean Philosophy”를 주제로, 인공지능이 인지를 외화하고 인지적 격차를 해소하는 오늘날 철학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조명하였다. 김선희 교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이 인간 사회에 개입하는 중요한 서사로 기능해왔음을 지적하며, 문학적 서사와 달리 철학적 서사는 규범적·처방적 역할에 대한 요청을 수반한다고 설명하였다. 철학은 세계를 ‘창조’하지는 않으나 창조의 조건과 개념적 토대를 제공하고 무수한 가능세계 사이를 매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발표자는 19세기 조선의 철학자 최한기가 ‘기(氣)’를 시간적으로 우연하고 공간적으로 열린 장에서 일어나는 실천들을 포착하는 중립적·유동적·연결적 개념으로 활용하였음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한국철학이 대안적 서사로 기능할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이어 원광대학교 조성환 교수는 “Korean Philosophy in the Anthropocene: Questioning the Human Condition”을 통해 ‘근대성’이라는 해석학적 틀 속에서 이해되어 온 한국철학을 인류세(Anthropocene)의 관점에서 재조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발표자는 기후변화의 시대가 ‘인간의 조건’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의 논의, 특히 근대적 ‘글로브’와 구별되는 ‘행성’ 개념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산 정약용, 해월 최시형, 소태산 박중빈의 사상을 ‘인간의 조건에 대한 탐구’라는 키워드로 재해석하고, 한국철학이 세계와 공명하는 이른바 ‘K-철학’으로서 인류세 시대에 어떠한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세 번째 발표에서 안양대학교 김보름 연구교수는 “Neo-Confucian Challenge to Ancient Greece: Yi In-jae’s Reinterpretation through Li”를 주제로 발표하여, 한국의 성리학자 이인재(1870~1929)가 1912년 저술한 『고대희랍철학고변(古代希臘哲學攷辨)』을 분석하였다. 발표자는 이인재가 성리학적 형이상학을 통해 서구 사상의 토대를 평가함으로써 상호문화적 해석의 통상적 방향을 역전시켰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인재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부터 스토아학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철학자들이 ‘리(理)’를 물질적 실체인 ‘기(氣)’로 오인하였다고 비판하며, 소크라테스는 도덕을 주관적 양심에 국한시켰고 플라톤은 이데아를 실천으로부터 분리시켰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질지성에 머물러 본연지성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김보름 교수는 중국과 일본을 거친 번역에 의존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인재의 ‘역전된 시선’이 전통적 범주를 문화적 유물이 아닌 능동적 도구로 활용하는 한국철학의 대안적 경로를 시사한다고 밝혔다.

마지막 발표에서 힐데스하임 대학교(University of Hildesheim)의 박술 교수는 “The Non-Existence of Korean Philosophy in Global Philosophy”를 주제로, 한국문학과 한국문화의 세계적 위상에 비해 한국철학이 전 지구적 담론에서 부재하다는 비대칭적 현상을 탈식민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박술 교수는 한국철학의 비가시성이 단순히 발굴이나 홍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철학사 서술과 재현에 각인된 ‘식민적 형이상학’이라는 구조적 원인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예수회 선교사 마르티노 마르티니가 『신중국지도첩』(1655)에서 한국철학을 비창조적이고 파생적인 것으로, 그러면서도 선교적 침투에 유용한 대상으로 묘사한 사례를 들어 초기 문헌의 식민적 시선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20세기 초 안확과 장도빈 등이 한국어로 집필한 최초의 철학사들이 한국철학을 향한 식민적 탐색을 내면화하고, 사후적 소급을 통해 종족본질주의를 확증하였다고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진형 책임연구원은 토론자로서 이번 패널이 한국철학을 역사적 서술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에 개입하는 지적 자원으로 다루고자 했다고 평가하며, 네 발표가 ‘K-철학’이라는 말을 각기 다른 층위 – 전 지구적 문제에 투입할 자원(조성환), 타 전통을 해석하는 도구의 역사적 선례(김보름), 범주 자체의 성립 조건(박술), 현대 이론의 전제를 비추는 거울(김선희)-에서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각 발표가 구체적인 인물과 텍스트를 검증 가능한 자료로 앞에 놓았다는 점을 성과로 꼽으면서도, 기(氣) 개념이 개별적 차이와 윤리적 판단의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지, 서양 이론이 설명틀이 되고 한국 사상이 해석 대상이 되는 배치가 조선학 운동의 절차와 구조적으로 다른지, ‘시선의 역전’보다 ‘번역의 개입’이 더 핵심적인 문제가 아닌지, 한국철학의 부재를 논할 때 일본이라는 매개항을 독립적 층위로 다루어야 하지 않는지 등을 물었다.
이번 세션은 서사, 인류세, 상호문화적 해석, 탈식민 등 각기 다른 접근을 통해 ‘한국철학’이라는 범주 자체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한국철학을 고정된 전통이 아니라 세계 지성사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담론으로 조명함으로써, 그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