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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NU 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 – 하용출 교수(워싱턴대학교)

2026-09-09

서울대학교 현대한국종합연구단 국제학술대회 첫째 날인 8월 21일 오전 11시 20분, 영원홀에서 하용출 워싱턴대학교 교수의 기조연설 「서구적 패러다임을 넘어: 한국적 사회과학과 전통의 역할(Beyond Western Paradigms: The Korean Style of Social Sciences and the Role of Tradition)」이 진행되었다. 하 교수는 한국학이 오랜 발전을 거치며 제도적으로는 성숙한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지만, 이러한 제도적 성숙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사회과학적 이론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 발표를 시작하였다.

2026 SNU 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 – 하용출 교수(워싱턴대학교)

하 교수는 한국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보편주의(universalism)와 맥락주의(contextualism)를 서로 대립하는 접근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의 역사적·사회적 특수성을 발견하고 이를 학문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기존 사회과학의 토착화(indigenization)는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학이 이제 토착화의 단계를 넘어 ‘탈주변화(deprovincialization)’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한국을 서구에서 형성된 이론을 적용하고 검증하는 주변적 사례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험을 통해 기존 사회과학의 개념과 이론 자체를 재검토하고 새로운 이론을 생산하는 연구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가능성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하 교수는 기존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여러 현상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 왔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새로운 이론적 현상을 발견하기 위해 세 가지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첫째는 근대화와 함께 전통이 해체되었다는 ‘전통 단절의 신화’를 벗어나는 것이다. 전통을 근대성과 대립하거나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지는 잔재로 보는 대신, 근대적 제도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전통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형되고 지속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 국가 내부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국내연구(domestic studies)와 지역적·비교적 맥락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지역연구(area studies)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역사학과 사회과학 간의 보다 긴밀한 협업을 통해 장기적인 역사적 과정과 사회과학적 개념화를 연결하는 것이다.

하 교수는 이와 같은 접근을 통해 한국의 경험이 새로운 사회과학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전통과 근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후발산업화(late industrialization)의 경험, 근대적 사회관계 속에서 가족주의가 재구성되는 신가족주의(neo-familism),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관계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탈관료화(de-bureaucratization) 등의 현상은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일반적인 이론을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잠재력이 실제 학문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 역시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한국학이 성숙한 제도와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국을 연구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 사회과학의 보편적 이론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 교수의 기조연설은 한국을 기존 이론으로 설명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 한국의 역사와 사회가 새로운 사회과학적 질문과 개념,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적 자원임을 강조하며 향후 한국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