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2026 SNU 국제학술대회 세션 – A Thanatology of Contemporary Korean Society

2026-09-09

서울대학교 현대한국종합연구단이 “Korea as Method”를 주제로 8월 21일과 22일 양일간 개최한 제3회 국제학술대회의 둘째 날, 「현대 한국사회의 죽음학(A Thanatology of Contemporary Korean Society)」 세션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30호에서 진행되었다. 강재호(서울대학교) 교수의 사회 아래 김항(연세대학교), 이승철(서울대학교), 이동신(서울대학교) 교수의 세 발표가 이어졌다. 세 발표자는 각각 국가적 애도, 자본주의의 파국적 상상력, 그리고 한국사회의 ‘빨리빨리’ 문화라는 서로 다른 대상을 통해 죽음이 현대 한국사회의 정치와 경제, 시간성을 이해하는 데 어떠한 분석적 가능성을 제공하는지 탐구하였다.

먼저 김항(연세대학교) 교수는 「정치신학과 영구적 멜랑콜리: 광주 5·18 항쟁의 추모에 관한 고찰(Political Theology and Permanent Melancholy: A Consideration from the Commemoration of Gwangju May 18 Uprising)」이라는 제목으로 근대국가의 애도와 정치신학의 관계를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추모를 통해 고찰하였다.

김항은 정교분리가 유럽의 종교 내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근대 주권국가의 핵심 원리 가운데 하나임을 지적하였다. 토머스 홉스가 내면의 신앙(fides)과 외적인 예배(confessio)를 구분했듯이, 근대국가는 개인의 내적 신앙에는 개입하지 않으면서 외적 행위와 공적 질서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원리가 헌법적 차원에서 정착함에 따라 구원과 영생을 둘러싼 기독교 정치신학은 세속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개인의 죽음에 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종교적 의례 역시 정치로부터 분리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발표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가 수행하는 죽음의 애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특히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기독교 정치신학이 유럽과 동일한 방식으로 정치적 계보를 구성하지 않았던 한국에서 국가 주도의 추모는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물었다. 김항은 5·18 희생자 추모를 사례로, 근대국가의 조직 원리 속에서 이미 지워진 형태로 내재해 있는 기독교 정치신학이 한국의 국가적 애도 과정에서도 일정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 그는 프로이트의 개념을 빌려 국가가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이 성공적인 ‘애도 작업(Trauerarbeit)’을 통해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실을 끝없이 현재화하는 ‘영구적 멜랑콜리’로 귀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이승철(서울대학교) 교수는 「자본의 두 가지 죽음충동: 〈설국열차〉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포스트아포칼립스적 상상력(Capital’s Two Death Drives: Post-Apocalyptic Imaginaries in Snowpiercer and Concrete Utopia)」이라는 제목으로 두 한국영화에 나타난 자본주의의 상이하면서도 서로 얽혀 있는 죽음충동을 분석하였다. 두 작품은 기존 세계가 붕괴한 이후 다시 한번 찾아오는 ‘두 번째 파국’을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일이 곧 자본주의를 상상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고 지적한 데서 출발하여, 이승철은 두 영화가 자본의 서로 다른 죽음충동을 형상화한다고 보았다. 〈설국열차〉의 열차는 위기와 희생, 관리된 반란을 반복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유지되는 체제이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과 상응하며, 위기를 반복적으로 생산하고 극복하면서 존속하는 자본주의의 운동을 보여준다.

반면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아파트는 외부의 자원을 소진하면서 과거의 안정된 상태를 복원하고 유지하려는 폐쇄적인 체제를 형상화한다. 이승철은 이를 최근 논의되는 ‘지대추구 자본주의(rent-seeking capitalism)’와 ‘신봉건주의(neo-feudalism)’의 문제와 연결하였다. 두 형태는 각각 착취(exploitation)와 수탈(expropriation)에 대응하지만, 낸시 프레이저의 논의를 빌리면 별개의 체제라기보다 자본주의적 재생산 과정에서 전경과 배경을 이루는 상호의존적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두 영화의 결말은 끝없는 반복과 요새화된 정지 상태 모두를 넘어설 수 있는 정치적 단절의 가능성을 미약하게나마 제시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이동신(서울대학교) 교수는 「K-시간 프레이밍하기: ‘빨리빨리’ 삶의 죽음을 연장하기(Framing K-Time: Prolonging the Death of the Ppalli-ppalli Life)」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압축적 성장과 결부되어 온 ‘빨리빨리’ 문화가 디지털 시대에 맞이하는 역설적인 운명을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분석하였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회변화를 가능하게 한 중요한 삶의 양식으로 자주 설명되어 왔다. 21세기에 들어서도 금융에서 음식배달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기술은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을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동신은 바로 이러한 기술적 가속이 오히려 ‘빨리빨리’라는 인간적 삶의 형식을 소멸시킬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작동할 뿐 아니라 점점 더 적은 인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빠른 노동과 적응 능력을 기반으로 했던 ‘빨리빨리’ 문화는 기술적 가속에 의해 역설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이동신은 이러한 불안이 최근 한국 대중문화가 시간을 재현하는 방식의 저류에 자리한다고 보았다. 〈응답하라 1988〉과 〈응답하라 1994〉가 1980~90년대를 향한 향수를 재현하고, 〈선재 업고 튀어〉와 〈철인왕후〉 등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타임슬립 서사를 반복하는 현상은 현재의 시간에서 벗어나 과거의 시간성을 다시 붙잡으려는 욕망으로 읽을 수 있다. 하이데거의 논의를 따라 현존재가 죽음에 직면함으로써 자신의 시간성과 존재를 발견한다고 할 때, 이러한 작품들은 임박한 ‘빨리빨리’ 삶의 죽음을 연장하려는 집단적이면서도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표는 ‘빨리빨리’ 삶의 소멸이 단지 한국적 문화 하나의 쇠퇴가 아니라 기술의 속도와 인간의 삶 사이의 관계를 다시 묻게 하는 21세기의 실존적 문제임을 제기하였다.

이날의 세 발표는 죽음을 단순히 삶의 종결로 다루지 않고, 현대 한국사회를 구성해 온 국가와 자본, 시간의 질서가 자신의 한계와 모순을 드러내는 순간으로 사유하였다. 5·18의 국가적 애도에서는 끝나지 않는 상실이 ‘영구적 멜랑콜리’의 형태로 남았고,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에서는 반복과 정지라는 두 죽음충동이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지탱했으며, ‘빨리빨리’ 문화에서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적 가속이 오히려 그 삶의 형식 자체를 소멸시키는 역설이 나타났다. 이를 통해 세션은 ‘죽음’을 과거의 종결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정치적·사회적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한국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현대국가와 자본주의, 기술적 시간성의 작동 방식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