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2025 SNU 국제컨퍼런스 세션 - Walking as Object-Method in Korean Studies
2025-09-17
서울대학교 현대한국종합연구단은 지난 8월 22일과 23일 양일간 “Korea as Symptom”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회의 첫 세션은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의 발레리 줄레조(Valérie Gelézeau) 교수가 제안, 구성한 “Walking as Object-Method in Korean Studies” 패널로 문을 열었다. 아시아연구소 230호에서 진행된 이 세션은 줄레조 교수가 사회를 맡았으며, 걷기라는 행위를 연구 방법이자 연구 대상으로 삼은 다섯 편의 발표가 차례로 이어졌다.
첫 번째 발표 “Walking along the DMZ Peace Trail as Object-Method to Reconsider Post-Traumatic Space in the South Korean Border Zone”에서 줄레조 교수는 DMZ 평화의 길을 직접 걸으며 관찰한 경험을 토대로, 남북 경계 지역의 사회적·지리적 역학을 섬세하게 포착하였다. 그는 이산가족, 북한이탈주민, 디아스포라 공동체 등이 이 지역에 불연속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걷기를 통해 이 공간의 단절성과 연속성을 동시에 사유하려는 시도를 제시했다.
두 번째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의 손유나 박사과정생은 “Walking Empowerment: Civil Society and the Making of Paths”를 주제로, 대전둘레산길과 계룡산둘레길을 중심으로 한국 시민사회가 만들어가는 ‘길’의 의미를 분석하였다. 그녀는 걷기를 지식의 촉각적 체제(haptic regime of knowledge)로 파악하며, 이를 통해 걷기가 단지 이동의 수단이 아닌, 공동체적 행위로서 작동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세 번째로, 가톨릭대학교 조민지 교수는 “Summoning Pre-Technological Technologies: The Politics of Walking in South Korea, 1960s and 1970s”에서 1960~70년대 한국 사회에서 걷기가 지닌 정치적 이중성을 조명하였다. 그녀는 걷기가 국가 주도의 동원 수단이자, 동시에 이에 맞서는 저항의 장치로 기능해왔다는 점에 주목하며, 한국 근대사 속 걷기의 양면적 역할을 역사적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네 번째 발표에서 싱가포르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의 이다은 박사과정생은 “Walking with the Moving Fieldsite: Doing Mobile Ethnography in Digital Nomad Research”를 주제로 모바일 민족지학(mobile ethnography)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그녀는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유동적인 연구 대상을 추적하면서, 연구자의 신체 자체가 이동하는 현장노트가 되어가는 과정—즉,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움직이는 필드의 역동성을 성찰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지정학연구소(French Institute of Geopolitics)의 마고 쿤츠(Margot Kunz)는 “Virtual Walking as an Experience of Contemporary Hybrid Urban Space”를 제목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튜브의 “Walk in Seoul” 영상들이 수억 뷰를 기록한 현상을 분석하였다. 그는 한국의 도시공간이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생성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가상 걷기’라는 새로운 행위를 통해 사이버 플라뇌르(cyber-flâneurs)라는 새로운 도시 주체의 형성을 탐구하였다.
이 세션은 ‘연구대상’과 ‘연구방법’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이자, 걷기라는 일상적 행위를 이론적으로 전유하는 실험장이었다. 발표자들은 걷기를 단지 공간을 통과하는 행위가 아니라, 지식을 만들고 감각을 매개하며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하나의 ‘오브젝트-방법(object-method)’으로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지형, 기술, 공동체, 정동을 새롭게 탐색할 수 있는 실험적 통로를 제시하며, 한국학이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유연하게 재구성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